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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특히 프랑스 와인을 찾아보면 “대통령의 와인” “대통령이 극찬한 와인” 등등 일명 <대통령 마케팅>으로 와인을 소개하는 와인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합니다. 이 마케팅은 프랑스 중에서도 보르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5대 샤토라 불리우는 샤토들 중 3곳인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샤토 라피트(Chateau Laffite),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1801~1809)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 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하며 계몽주의 사상과 공화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미국을 바꾸어 나간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프랑스 문화를 미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미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에 정치가로서는 드물게도 <와인> 카테고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제퍼슨이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 (1785~1789)를 지내던 시절에서 출발합니다. 1785년, 벤자민 프랭클린의 후임으로 임명된 그는 4년 남짓한 시기에 프랑스의 교육, 문화, 건축, 농업, 와인은 물론 식문화까지 많은 것들에 매료되었습니다.
제퍼슨이 프랑스에 머물던 시기의 유럽 상황은 프랑스와 영국이 식민지 패권, 경제적 경쟁, 정치적 이념 차이(군주제 VS 공화제)로 지속적인 경쟁과 충돌을 반복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전에 미국 독립전쟁(1775~1783)에서1778년 프랑스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영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미국 독립이 확정되었고 6년 후 프랑스 혁명이 발발, 1793년 프랑스는 루이 16세를 처형하면서 공화정을 선포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 이후 나폴레옹 시대(1799~1815)에 접어들면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1806), 영국의 해상 봉쇄등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이에 미국도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 혁명과 공화주의를 지지하며 농업 중심 경제를 원했던 반면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영국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와 강한 중앙정부를 주장하며 상공업 중심의 경제를 원했습니다.
제퍼슨이 이토록 프랑스에 감화되었던 것은 단순히 유럽에 대한 동경에서 온 것이 아닌 유럽, 특히 프랑스의 정신과 문화를 미국사회에 도입하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농업, 음식, 건축 분야에 관심이 많았으며 자연스럽게 와인에 대해서도 보다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와인 대통령”, “대통령 마케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요 ?
1. 토머스 제퍼슨의 와인 여행
베르나르 지네스테(Bernard Ginestet)가 발간한 <Thomas Jefferson à Bordeaux et dans quelques autres vignes d’Europe> 책은 제퍼슨의 와인 여행기를 담은 일기로, 마치 조선왕조실록처럼 그가 다녔던 지역, 와이너리, 와인에 대한 평가를 기록해두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의 여행은 1787년 2월 28일부터 약 3개월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를 포함 약 1,200마일(약 1,931km)에 달하는 여정입니다. 각 지역의 포도 재배 방법과 와인 양조 기술을 조사하며 유통과정까지 세세하게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각 지역의 와인을 시음하며 품질을 평가하고 이를 기록에 상세히 남기는 한편 미국으로의 와인 수입을 고려하였습니다.
여정의 출발은 보르도(Bordeaux)였습니다. 여러 와인들을 시음하였는데, 현재까지도 많이 알려져 있는 시음 노트를 살펴보면,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 : “우아함과 균형 잡힌 맛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도 최고일 것이다 ”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 “섬세하고 향기로운 와인”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 “보르도 최고의 와인 중 하나”
샤토 디켐(Chateau d’Yquem) : ” 이 와인은 특별한 품격을 가지고 있으며, 단맛과 복합성이 매우 훌륭하다 “
와 같은 평가를 남깁니다.
아직 1855년에 발표된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셰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보르도 와인들 중 5대 샤토들을 골라내는 등 확실히 일반인 수준을 넘어선 테이스팅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흥미로운점은 보르도만의 독특한 상인인 크루티에(Courtier)에가 어떻게 활동하였는지를 상세히 기록해두었는데 제퍼슨은 이들을 보며 프랑스 와인 유통 방식에서 비효율성과 부정행위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와인은 와이너리에서 직접 병입되지 않고, 중간 유통업자들이 오크통째로 받아 병입을 외주를 맡겼는데 이 과정속에서 와인에 물이나 알코올을 섞거나 품질이 다른 와인을 혼합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습니다.
때문에 제퍼슨은 특히나 많은 애정을 기울였던 라피트와 오브리옹을 주문하면서 와이너리에 직접 편지를 보내 “반드시 직접 병입하여 밀봉한 상태로 보내달라” 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Get me 12 dozen bottles of Château Haut-Brion… well corked and packed.” – 1787년 5월 6일자 편지
이 외에도 부르고뉴에서는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 몽라셰(Montrachet)등의 와인을 시음, 론에서는 에르미타쥬(Hermitage) 블랑을 높게 평가하는 등 탁월한 안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2. 백악관에서도 이어진 와인 사랑
제퍼슨은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매년 400~600병의 와인을 주문했으며, 대부분의 와인을 사비로 구입하였습니다. 퇴임 후에도 엄청난 와인 소비는 멈추지 않았고, 와인 외상값만 현재 가치로 약 2억원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마데이라 와인으로 건배한 일화는 이미 많이 유명하죠.
3. 미국에 프랑스식 와인 문화 정착 시도
토머스 제퍼슨은 와인이 맥주나 증류주보다 건강에 더 유익하다고 믿었습니다. 이후에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 인들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기름진 식습관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원인이 와인이라는 내용으로 제퍼슨은 해당 용어 등장 이전부터 미국인들의 식습관과 알코올 소비 문화를 바꾸고자 노력했습니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배운 농사법과 포도 재배법 그리고 프랑스의 묘목을 미국의 버지니아에 심어 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필록세라(Phylloxera)가 창궐, 아직까지 포도나무 접목 방식이 알려지기 이전으로 유럽종 포도나무는 필록세라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나무가 죽게되면서 그의 시도는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전에 힘입어 차후 포도나무 접목 방식이 알려지며 미국에도 와인 생산이 시작되었고 그 당시 제퍼슨이 전파했던 재배는 물론 양조에 대한 기술력은 미국 와인 산업이 프랑스식 양조를 따르게 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4. 와인 위조 사건
198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1787년산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 와인이 출품되었습니다. 이 병에는 ‘Th. 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 시절(1785~1789)에 소유했던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면서 업계내외로 큰 주목을 받으며 당시 156,450 달러에 크리스토퍼 포브스가 낙찰받게 됩니다.
이후 1987년,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와인 수집가인 윌리엄 코크는 같은 출처의 1784년 및 1787년산 샤토 라피트와 샤토 브란 무통(Chateau Brane-Mouton) 와인 4병을 약 50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5년, 보스턴 뮤지엄에서 전시를 준비하던 중 이 와인들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조사 결과 병에 새겨진 이니셜이 17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전동 공구로 새겨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위조품으로 판명납니다.
이에 따라 코크는 판매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소송은 기각되었고 이 사건은 와인 경매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켜 와인의 진위 여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 프랑스식 음식 문화의 미국 도입
와인과 음식은 역사속에서 언제나 함께 성장해 왔는데 제퍼슨은 프랑스식 요리 및 테이블 매너를 미국에 도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 머무를 당시에는 프랑스 요리사를 직접 고용하여 요리를 먹고 또 배우기도 하였으며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프랑스 요리사들을 백악관 주방에 고용하며 당시 사회에 프랑스식 요리를 퍼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대중화돤 대표적인 메뉴를 소개하자면,
1. 마카로니 앤 치즈(Macaroni and Cheese)
1787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파스타와 치즈를 즐겨 먹었고, 이를 미국식으로 변형하여 소개하면서 현재는 미국 가정식의 대표 요리가 되었습니다.
2.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
프랑스에서 감자튀김을 처음 접하고 이를 미국으로 가져왔는데 이게 말도 안되는 파급력을 보이며 급속도로 대중화 됩니다. 이 프랑스식 감자튀김을 후에 미국에서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d Potatoes)로 알려지며 대중화되었습니다.
대통령 마케팅은 와인 업계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취임식, 만찬, OOO대통령이 사랑했던 와인 등등 정말 많은 형태로 존재하지만 아마도 그 시작은 토머스 제퍼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취임한 이후로도 정말 많은 편지를 프랑스와 주고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정치적인 내용이 일부, 그 외에는 앞서 다루었던 문화, 음식, 와인 그리고 농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편지들은 지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to John Page (May 4, 1786)
to Benjamin Vaughan (June 27, 1790)
to Samuel Vaughan Jr. (November 27, 1790)
to Martha Jefferson Randolph (July 21, 1793)
to James Madison (May 15, 1794)
“Summary of Public Service” by Thomas Jefferson (After September 2, 1800)
Excerpt from a Letter from Thomas Jefferson to Ellen Wayles Randolph Coolidge (July 10, 1805) Excerpt from a to Anne Randolph (June 7, 1807)
to Bernard McMahon (January 13, 1810)
to Charles Willson Peale (August 20, 1811)
to Thomas Cooper (October 7, 1814)
to Baron Hyde de Neuville (December 13, 1818)
to Dr. Vine Utley (March 21, 1819)
to Thomas Worthington (November 29, 1825)
Excerpt from a Letter from Thomas Worthington to Thomas Jefferson (January 7, 1826)
“Monticello”; an excerpt from The Private Life of Thomas Jefferson by Hamilton W. Pierson (1862)
이 중에서 하나 정도만 살펴보면 주미 프랑스 대사 하이드 드 누빌 남작(Baron Hyde de Neuville)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전문>
몬티첼로, 1818년 12월 13일
각하께서 보내주신 편지로 프랑스가 동맹국들의 점령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프랑스의 해방을 저보다 더 기뻐할 외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유럽이 황폐해진 것은 나폴레옹의 잔혹한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프랑스는 많은 죄를 지었지만, 그 대가로 받은 고통은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 압제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면, 마치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 예술과 뛰어난 과학,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자유로운 헌법이 프랑스를 이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언이 틀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프랑스는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고통을 가했던 이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상기시킬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당장은 조용히 지내며 새로운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개정된 헌법은 현재 프랑스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자치를 보장하며, 질서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자치를 허용할 것입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유일한 동맹국이었던 프랑스를 모든 미국인이 감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맺은 우정, 목격한 선한 마음씨, 그리고 받은 환대 덕분에 더욱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도덕적 관점에서, 우리 국가의 입법부가 와인에 대한 관세를 낮출 전망을 보이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와인에 대한 세금을 단순히 부유층을 겨냥한 세금으로 보는 것은 오류입니다. 이는 중산층 시민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을 막고, 결국 그들을 위스키라는 독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와인이 저렴한 나라에서는 주정 음료로 인해 취하는 일이 없으며, 와인이 비싸서 증류주가 일반 음료로 대체된 나라에서는 술 취함이 만연합니다. 사실 와인은 위스키의 해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와인의 관세를 다른 상품과 같은 수준으로 조정한다면, 우리는 현재 럼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가격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누가 와인을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와인의 소비가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금 정부 정책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독성 음료 대신 와인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국고 역시 한 사람에게서 높은 세금을 걷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걷는 것이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개혁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의 상인들은 유럽,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하고 훌륭한 와인의 다양성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한 영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우수한 제품과 생활 용품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이 알려지고 미국에서 수요가 생기려면, 해당 국가의 현지 상인들이 직접 이러한 상품을 가져와 전시하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이윤으로 판매해야 합니다. 오직 이런 방식만이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제품을 익숙하게 만들고, 현재 사용 중인 다른 품목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이 가진 우수성을 인정받게 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 각하께서 몬티첼로를 방문하셨던 일을 기쁘게 기억하며, 그 방문이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음을 전합니다. 또한 각하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담아 인사를 드립니다.
일반인을 뛰어넘는 수준의 테이스팅 능력을 가졌고 포도나무 재배는 물론 양조에 대한 안목 그리고 이를 미국에 도입하고자 하였던 대통령으로 남아 있어 미국 와인 산업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기에 손색없는 그의 이야기를 발자취를 따라 알아보았습니다.
” 와인이 저렴한 나라에서는 주정 음료로 인해 취하는 일이 없으며,
와인이 비싸서 증류주가 일반 음료로 대체된 나라에서는 술 취함이 만연합니다.
사실 와인은 위스키의 해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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